- 작성시간 : 2009/03/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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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테고리 : 영화

김현은 '불꽃의 말'이라는 짧은 수필에서 술이 불러오는 대화를 예찬한다. "술이 위 속으로 들어가면, 말의 성감대를 움직여 사람의 입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맥락은 음성적이고도 오묘한 술의 기능으로 흘러가지만, 나는 이 문장의 뒷부분에서 멈춰 '죽도록 부끄러운'마음으로 단장취의(斷章取義)의 우를 범한다. 사람의 입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술', 술을 증오할 때 이유의 8할은 이 기능에 있다. 나의 숙취는 '어제 아가리 닥치지 못한 나'를 자책하는 것으로 시작해 왔으므로.
요즘 내가 말이 많다는 사실, 잘 안다. 아니 원래 많았다. 노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정말 아가리를 잘 못 닥친다. 내 요란함에 대해 나는 주로 상대방이 침묵이나 대화가 끊긴 것을 불편해 할까봐 내가 먼저 말을 건다는 식의 변명을 해 왔지만, 사실 침묵을 참지 못하는 쪽은 나다. 어쨋든 간격을 메우기 위한 시도는 가끔 실패하기도 하지만, 진땀만큼의 값어치는 한다고 스스로 위로해왔다. 가끔은 나로 인해 허물을 누그러뜨리는 사람도 있을 거라 자만도 하며.
근데 얼마 전 약간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후배 J와 선배 B와 우연히 동석한 자리에서였다. 며칠 전 동아리에서 여럿이 함께 있다가, 내가 무슨 얘길 하던 중 갑자기 수첩을 뒤져 독서하다 적어둔 구절을 '낭독'한 적이 있다. 나는 아마도 그 상황에 '앗! 이 순간엔 이 말 읽어주면 모두 공감하겠군'이란 심정으로 꺼내 읽었을 것일텐데, 인용이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나 보다. 책의 전후 내용을 모르는 모두가 시큰둥하게 반응했던 당시의 민망한 기운이 J의 입을 통해 다시 회자되었던 것이다. J에 의하면 요즘 내가 '각주'의 강박에 시달리는 것 같다며, "모든 맥락을 다 아는 사람은 즐겁지만, 다른 사람은 '아~ 딴얘기~(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단다. 직격탄이었다. 끊임없이 입을 놀리는 사람들은 자기 얘기가 재미 없을 수도 있단 사실을 좀처럼 믿지 않으니까.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망상은(혹은 현실 직시는) 이후의 대화에 엄청난 장애를 초래한다. 내가 이런 말 하면 나를 엄청 쪼잔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대답하기 귀찮은 거 아닐까? 내가 이 얘길 왜 하는지 알고는 있을까? 너무 어려운 단어를 썼나? 방금 이 말 하나마나 한 말이었나? 단 한 번 말을 거는 데도 수많은 질문이 앞을 막고 서 있는 것이다. 가끔은 이런 시달림에 견디다 못해 대화를 포기하기도 하고, 흔히 발생하는 상황이나 인간 유형에 대비해 마련해 둔 머릿속 매뉴얼을 들추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무성의나 의례적 반응들이야말로 침묵보다 나은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번 고민하고, 결국 후회한다.
<은하해방전선>은 말 많아 탈이 많은 '호모 중언부어니스'의 고민을 그리고 있다. 장편 입봉을 압둔 단편영화감독 류영재는 연인 은하와 헤어지고 맡기로 한 영화도 안 풀리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는 자기 단편이 초청된 부산(영화제)으로 내려가 제작사 사람들과 곧 들어갈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대화는 하나마나한 말장난으로 되풀이된다. 영재는 시나리오 초고조차 완성하지 못했고, 제작사 사람들이라곤 영화를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들 뿐이다. 프로듀서나 제작사는 프로젝트 몸집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영재의 단편 영화에 출연한 배우 '혁권 더 그레이트'(그는 특촬물의 주인공이다)는 영화판에 빌붙을 한 자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렇다고 감독 류영재가 중심을 잡고 있느냐, 그건 더더욱 아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시놉시스를 피칭하지만 거기엔 설정만 있고 내용은 없다. 진지하게 듣지 않는 사람들, 혹은 '후지다'고 불쑥 끼어드는 반응들(혹은 그 반응들에 대한 영재 내부의 두려움)에 영재는 항변한다. 재밌잖아, 누구나 그렇잖아? 누구나 그럴 때 있잖아?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하다. 제작사 사람들은 좀 더 팔릴만한, 좀 더 쎈 이야기를 원하고 영리한 관객들은 무명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엔 관심이 없다.
이 와중에 실어증에 걸린 영재가 겪는 코믹한 에피소드와 꿈과 환상으로 개입하는 연인 은하와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된 골격을 이룬다. 과음한 날 밤 꿈 속에서 영재는 은하를 본다. 아마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을법한 둘의 심한 다툼 끝에, 은하는 '좀 닥치라'며 포스트 잍을 가차없이 영재 입에 붙여버린다. 이후 영재는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 필담이나 복화술로 고비를 넘기던 영재는 급기야 마이크를 대면 본인 목소리, 육성으론 이상한 악기소리라는 기괴한 재주까지 부리게 된다. 처음에 영재는 이 모든 상황을 난감해하고 불편해하지만 갈수록 될대로 대란 식이다. 결국 자기 영화의 GV자리에서 영재는 배우 혁권의 엉터리 대답을 내버려둔다. 혁권은 관객의 모든 질문에 '인간의 소통'운운하며 동문서답으로 응수해 폭소를 자아내는데, 이 장면은 역설적으로 <은하해방전선>이야말로 그 망할놈의 '소통'을 포기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작품임을 증명한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펜을 들고, 카메라를 들고 멋진 소통을 꿈꾸지만, 진심을 나누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할 거라며 신이 났던 자신의 꼴이 가끔씩 얼마나 우스워지는지 이골이 나도록 겪어봤을 감독(여기선 윤성호 감독)은 처지가 비슷한 캐릭터 영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멍하니 자기 영화 GV를 방관하던 중, 영재의 눈이 번쩍 뜨인다. 헤어진 연인 은하가 관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영재는 은하에게 다가가 뉘우친다. 우리 대화는 왜 그랬을까? 그러나 은하는 '우린 대화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앞으론 네 얘기 잘 들을게'란 다짐엔 '넌 내 언어를 배운 적이 없다'며 다그친다. (이 대화는 이 GV장면에서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장면에서 나눈 대화들일지도 모르지만 편집) 영재가 실어증에 걸리게 된 꿈 속에서, 연인에게 한참 짜증내던 영재가 "연인은 그런거 아냐? 교감신경이 얽혀 있는. 내가 맞으면 니가 아프고, 뭐 그런 거 아냐?"라고 말하자 은하는 "그러면 다른 것도 공유해야지"라고 대답한다. 은하는 그렇게, 우리가 무심코 흘려댄 그 어마어마한 '말'들을 뉘우치게 만든다. 그건 대화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우리는 늘 투명한 벽 속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은하해방전선>은 '수많은 관객과의 소통'을 앞둔 감독의 소심함과 두려움을 마치 연애에서의 소통 실패처럼 가깝게 느끼게 해 준다. 물론 영화와 연애는 다르지만, 그 두 가지는 영재를 불안하게 하고 바보로 만들며 급기야 실어증에 걸리도록 하는 같은 매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내 얘기가 네게 닿았니? 대답은 영영 들을 수 없겠지만.
이 영화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팠던 욕심으로 시끌벅적하긴 하지만, 내겐 일종의 다짐으로 읽힌다. 영화는 관객을 고려할 때 진정한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다고. 한편으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좌파적 코드나 영화의 실험적인 형식, 인디 영화라는 태생적 한계(?)는 그래도 영화는 상품이기 앞서 창작자의 고군분투라는 기조는 변치 않으리란 예상을 하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 하는가, 네가 듣고 싶은 얘길 들려줘야 하는가.
영화든, 사적인 대화든 소통의 첫째 고민은 나 아닌 누군가의 자리를 마련하는 지점일 것이다. 정답은 나오지 않겠지만 이 질문이 그래도 아름다운 이유다. 거기엔 '네'가 있으니까.
내 자학이 결코 아름답지 않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또 떠들게 될거라는 비극이 분명하지만, 내 너그러운 청자들 때문에, 나는 오늘도 혀 꼬인 장광설을 늘어 놓을 것만 같다.
덧붙이는 이야기.
1.어릴 때 억울한 일을 겪으면 '말의 권력자'가 되는 백일몽을 꾸곤 했다. 그들이 즐겨 보는 대중 매체에 등장해 나를 깔봤던 애들에게 보란듯이 복수하고, 내게 불친절했던 사원을 채용한 기업을 비판하는 유치한 꿈. 유명한 사람이 되면 나를 무시한 걸 후회하게 해 주겠다는 못말리는 발상이었지만, 누구에게나 공적인 매체를 점유하고 싶은 욕망은 있지 않은가? 영화는 그 중에서도 굉장한 파급력을 가진 매체다. 영화를 꿈꾸는 몇몇 주변인들이나 그 꿈을 선취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모두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은 욕구가 어떻게 이 사람을 키웠는지 놀랍도록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제 얘기를 '크고 널리' 할 수 있는 권력을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엄청난 난관에 봉착하는데, 영화의 공정 과정은 '팀 작업'이며 다수의 관객과 거래하는 산업이란 사실 때문이다. 나는 영화에서 살짝 조롱했던 '영화판 술자리 장면'을 보며 영화판의 다소 사나운 분위기는 이 지점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물론 소설 창작도 독자를 고려하고 편집자와 상의해야 하지만, 영화는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고집 센 감독과 재력 센 투자자들, 그리고 수많은 스탭들의 생계가 얼마나 자주 부딪치는지 서당개가 풍월 읊게 되는 식으로 종종 귓속에 흘러 든다.
2. 수신자가 주로 빠지는 것 중 하나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너(듣는 사람)도 알고 있다'는 착각이다. 그것은 글에서 학자 이름이나 생소한 개념이 등장할 때 뿐 아니라, 어떤 지점에서 갖는 감정과 유추 능력, 연상 작용이 서로 제각각이기 때문에 그냥 문장에서도 오해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문학적 조예가 없으면 알아 듣지 못할 시적 은유 같은 건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힘들다. 만약 그 죽어도 부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다수와의 소통을 포기하거나, 좀 더 정교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말 거는 사람의 문제고, 듣는 사람은 수용자와 관련된 이론이나 연구에서 줄곧 등장하는 것처럼 저마다의 감광판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송신자의 1차적 의도조차 못 읽거나 심하게 엇나간 해석을 내놓는다면, 그건 성의 부족인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사실 하나마나 한 얘기다. 채널에 대한 고려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학술적인 글과 에세이는 다르고, 영화와 UCC는 다르다. 누군가와 얘기하려는 아름다운 의도와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 앞엔 반드시 자기가 무슨 채널에 빚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한다. <좋은 생각>에 실리면 가슴 뭉클할 글이 <시사인>에선 뭇매 맞을 수 있다. 입영통지서가 왔는데 열어보니 '잭인더박스'라니, 별로 재미 없다.
이 모든 '소통'의 옥쇄에서 자유로운 글이 딱 하나 있다. 일기. '네 일기에나 써라'라는 '반응'은 그래서 가장 모욕적이다. 참고로 이 폴더 이름은 영화 '일기'다. (아 정말 치졸하다)
태그 : 은하해방전선




덧글
J 2009/04/17 05:01 # 삭제 답글
오래된 일이지만 오늘 게시물을 보았어요오늘 처음 들어왔기에..ㅎ_ㅎ
언니의 기억과 해석에 약간의 어긋남이 있는 듯 하여요 흑...
첫째. 저는 결단코 '강박'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둘째. '딴얘기~'뒤의 괄호 안에 올 말은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그냥 (다)예요.
다시 한 번 정확히 말하자면 정말로 완전히 '딴얘기'라는 얘기도 아니구 '딴얘기다~라며 약간 어리둥절?할 사람도 있다' 정도였어요.
당시 언니가 수첩을 뒤져 '열등감'에 대한 글을 읽어 주기 전 언니는 대략 두 번(혹은 한 번) 정도 더 '인용'을 하셨었어요.
그리고 그 인용들은 나누어지던 이야기들과 '단어'를 공유하였지만
전체적인 주제랄까 내용에 있어서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기도 하였어요.
그것이 제가 '각주'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까닭이에요.
'각주'는 전체적 흐름과 상관 없이 본문 아래에 따로 쓰여진 보충 설명. 정보 같은 것이잖아요.
그치만 그렇다고 각주를 안 읽지는 않듯이
언니 얘기를 들으며 딴얘기 하고싶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요
그럴 수 없다기보다 그러지 않았어요
재미 없었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저는 언니가 인용했던 책 제목도 기억하는데.
한 번은 '혁명을 팝니다'였던가
그리고 또 다른 자리에서 한 번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었죠
'지방은 식민지다'도 한 번 얘기하셨던 거 같은데.
언니의 표현대로 '시큰둥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었다면
그것은 이야기 자체의 재미없음이나 사람들의 이해못함 때문이 아니라
인용이, 길지 않았던 대화 속에서 연거푸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저는 기억해요.
뭐랄까.. 이야기가 자꾸 외부에서 끌어다 대지는 느낌?
그런 게 있었어요. 이것도 사실 굳이 언니가 느꼈다고 하신 그 분위기를 설명하자면이지.
뭐 딱히... 주요한 정조였던 건 아니구요.. (저의 경우엔)
그런데 분명 제가 그때 밥 먹으면서 '듣는 사람은 모르고. 좀 재미 없고' 이런 표현을 썼던 거 같네요.
그건...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였지 제 느낌은 아녔는데.
제가 언니께 언닐 재미 없어한 사람이 된 거 같아 참 정말
지금 기분이 재미가 없네요 푸 ㅎㅎ (속상하다/슬프다랑 비슷한 뜻)
평소 같으면 그냥 입 다물었을 것을(전 대개 그러니까)
이 글은 '소통'에 대한 글이니까.
그리고 언니가 '충격'이란 단얼 썼으니까.
긴긴 댓글을 달아 봐요
그리고 시험 기간이니까..
시험 잘 보셔요*
(시험 보는 과목이 있으실지?_?)
- 뜻한 바와 다르게 읽히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과 좁은 도량 탓으로 저질러진 실수가 있다면 부디 사소한 것이기를 바라면서 후배J
+ 그냥 장난처럼 했던 짧은 몇 마디였는데 그게 이렇게 긴 말을 낳을 줄 몰랐네요. 정말 그땐 가볍게 한 거였는데. 참고로 저는 주어 '각주'에 서술어 '쩐다'를 썼었어요.. 이건 정확히 기억해요. 문장의 정확한 모양새는 기억 못 하지만.. 주어와 서술어만은!
J 2009/04/17 05:10 # 삭제 답글
결론은... 사실 죄송하다는 거. 이런 거 싫은데. 나 왜 그랬을까.'아가리 닥치지 못 한 나를 자책'할 건 저인 듯.
팥물고기 2009/04/18 15:06 #
앗. 내가 그 말 때문에 충격먹어서 장문을 쓴 건 아니야 ㅠㅠ 그리고 네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이 댓글을 읽고 좀 더 확실히 알게 되었고. 다만 내 화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거야.그건 네가 던진 말에, 아 기분나쁘다. 라고 생각한 게 절대절대 아니었음을 밝힐게. 다만.. 저 상황은 내게도 어떤 특수한 맥락이었어. '아, 내가 좀 과하긴 했구나'란 생각이 들만한 '타이밍'이었다고 말해두지. 나도 내 실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외부의 눈으로 들여다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거지. ^^
그러니까 너 때문에 내가 기분이 나빠졌다거나, 네 말을 오해했다거나(물론 사람은 언제나 오해를 하지. 그리구 너를 해명하게 만든거라면 내가 먼저 오해한거겠지만. 정말 미안해.) 그런 건 아니야...
그저 언제나 외부의 평가와 외부의 한마디에 깊은 생각에 빠지고, 이것저것 끌어와 생각나지 않던 모습까지 생각해보고,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사람의 한 모습이었다고만 생각해줘~
"인용이, 길지 않았던 대화 속에서 연거푸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저는 기억해요.
뭐랄까.. 이야기가 자꾸 외부에서 끌어다 대지는 느낌?
그런 게 있었어요. 이것도 사실 굳이 언니가 느꼈다고 하신 그 분위기를 설명하자면이지.
뭐 딱히... 주요한 정조였던 건 아니구요.."
나도 사실 너의 이 말대로,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걸 또 일화로 인용해서 쓰다보니 어느 부분엔 좀 많이 나가버린, 비약해버린 구석이 생긴 모양이당... 말은 참 어렵다. 아무튼 슬픈 기분이 들진 말길 바래~~
시험은 두개. 하지만 별로 큰 게 아니라 한가해.
^^시험 잘봐~~